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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03 2010년 광화문 교보문고 단상.



2010년 03월 끝자락에서.
광화문 교보문고 단상.





광화문 교보문고가 2010년 4월 1일을 기해서 기나긴 휴업에 들어갔다.
리뉴얼을 위해 긴 시간의 휴업을 갖는단다.
국내에서 가장 큰 서점이며 나의 놀이터이기도 한 장소가 문을 닫는다는게 무척 섭섭하다.
추억이 서린 장소이다보니 그것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눈에 담아두고 싶다고 생각해서 부랴부랴 나갔다.


사진이 많은 관계로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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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에 책과 짐이 가득한 상태에서 번들렌즈 하나만 들고 나간 덕에 그리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일종의 영정사진같은 마지막 현장을 기록했다는 점에선 조금 만족.





교보문고 중에서도 왜 하필 광화문이 추억의 장소냐 하면...유치한 얘기를 조금 쓸 필요가 있다.

나는 아주 어릴적부터 책을 좋아했다. 
그냥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라 광적이었다고 표현하는 쪽이 맞겠다.
초등학교때 방학계획을 적으라길래 너무나 당연하게 '책 40권 읽기.' 라고 적어냈더니 학교가 발칵 뒤집혔던게 기억난다.
그게 뭐 그리 대수라고.
하루에 한권만 읽어도 40권쯤은 금방 읽는건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닌데 왜들 그리 놀랐던건지 알 수가 없다.
책은 닥치는대로 다 읽었고 손에 집은 책은 일단 다 읽기 전엔 내려놓지 않았다.
제일 좋아하던 브리태니커 어린이 백과사전 89년판은 몇천번씩 읽어댄 탓에 걸레가 되다시피 했다.
심지어는 전화번호부까지 다 읽었다.
하지만 우리집은 원하는 책을 늘 살 수 있을 정도로 여유있는 집도 아니었고, 제일 큰 문제는 서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서울 근교였지만 차를 타고 번화가에 나가야만 작은 서점이 하나 있는 그런 곳들이었다.
작은 서점에서 키가 작은(또래에 비해서는 큰 편이지만...) 꼬마가 서점을 헤집고 다니며 이 책, 저 책 구경하는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책벌레였기 때문에 서점에서 눈총을 받아가면서도 끝까지 책구경을 하고 떼를 쓰고 엄마를 졸라 책을 한권씩 획득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런 내겐 동네 서점은 조금은 불편한 놀이터였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던가.
어느날 아버지가 서점에 가자고 했다.
아버지는 사촌언니와 날 데리고 차를 몰아 광화문에 갔다.
교보빌딩 옆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당시엔 먹기 어려웠던 맥도날드 빅맥을 하나씩 사주셨다.
-지금에야 하는 얘기지만 그때의 빅맥이 지금보다 훨씬 컸다. 내가 어려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사이즈가 다르다. 정말 그렇다.-
당시 티비에서 빅맥 광고를 무척 많이 했던것 같다.
아마 행사로 저렴한 가격에 판매를 해서 딱히 먹을 맘이 없었음에도 광고에 혹해서 먹었다는 쪽이 맞는것 같다.
물론 거기에 덜컥 낚여서 지금껏 맥을 들락거리는 내가 되버렸지만.
아무튼 이건 그리 중요한 얘기가 아니니 대충 넘기자.

잠시 옆길로 샜지만 어쨌든 외출의 목적은 서점이다.
계단을 내려가 지하의 서점으로 들어갔던 그 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기껏해야 2~30평 내외의 작은 동네 서점만 기웃거리던 내게 대형 서점, 그것도 아주아주 넓고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천장까지 빽빽히 꽂혀있다는건 정말 천국이었다.
당시에 무척 읽고 싶었지만 너무나 어려웠던 인문학과 과학 서적, 심지어는 동네 서점에선 구경도 할 수 없는 해외원서가 책장 가득 꽂힌 풍경이 감동을 넘어서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야말로 천국.
새 책의 덜마른 잉크냄새와 빳빳한 책장의 냄새가 후각을 타고 뇌까지 깊숙히 스며들었다.
더 놀라웠던건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책을 꺼내보고 주저앉아서 읽고 있더라는 것!
일단 서점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감시되는 동네 서점에선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상상조차도 할 수 없다.
서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마음에 드는 코너에서 서성인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얼굴로 책등을 훑어보고 꺼내서 휙휙 넘겨본다.
그리곤 주저앉아 잠깐의 독서시간을 즐긴다.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다.
이렇게 멋진 장소도 있구나-하고 진심으로 감동받았다.
한참을 뱅글뱅글 돌며 신세계의 기쁨을 만끽했다.
몇 날 며칠,몇년을 여기에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쇼핑-어쨌든 서점도 결과적으론 쇼핑의 공간이니까.-에 시간을 할애하는걸 끔찍히 싫어하는 분이라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책을 사야 했다.
사촌언니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나는 어린 왕자를 한권 집어서 돌아나왔다.
진심으로 그렇게 아쉬웠던 순간이 없었노라고 고백한다.
천국을 떠나기가 싫었다고 할까.
하지만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나는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면 그때가 생각난다.
그 날 구입했던 어린 왕자는 비를 맞고 얼룩진 채 책장 귀퉁이에 꽂혀있다.
차마 버릴수 없는 내 신세계의 추억들.

메일을 열어보니 광화문점 우수회원에게 쿠폰을 발급했단다.
음 우수회원이었구나. 
많이 다니기는 한 모양이다.
사실 집에서 광화문 교보문고가 가까운가 하면 절대 그렇지가 않다.
한시간 가까이 이동해야만 겨우 도착하는 제법 먼 거리이다.
그렇다고 내가 시간이 남아도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시간이 돈인 프리랜서의 입장에선 무척 비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교보문고를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리는건 내게 신세계를, 놀이터의 진짜 모습을 보여줬던 최초의 장소이기 때문일거다.
물론 현재 휴업중인 광화문 교보문고가 그때와 같지는 않을거다.
하지만 휴업 이후에 새로 리뉴얼될 광화문 교보문고가 나에게 전과 같은 의미를 지닐지는 잘 모르겠다.
추억의 조각이 조금 부서진 느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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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랑곰/페이피